넷플릭스를 꽤 오래 안 보다가 다시 시작했습니다. 퀸스 갬빗 입니다. 첫째 생일에 사준 체스를 어딘가에 고이 모셔두었는데 정리하다가 발견합니다. 어렸을 때 장기만 둬봤지 체스는 둬 본 적이 없는지라 알음알음 인터넷 찾아가면서 알려주었죠. 어라? 그런데? 너무 재밌는 거에요? 저랑 첫째랑 둘 다 초보여서 일단 게임을 해보는데.. 해보면서 규칙도 계속 찾아보고 서로 이기고 지면서 저녁마다 체스를 두게 되었죠. 그러다가 우연히 친구가 이 시리즈를 한번 보라며.. 꼭 추천해주더라고요. 음.. 그렇다면 어디 한 번 구경이나 스~윽 해볼까? 하며 클릭했죠. 왠걸...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5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극중 주인공 엘리자베스 엄마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극 중에서는 좀 다른 의미의 조언이었지만 사실 외국에 살면서 꼭 필요한 자질인 것도 같아요. 혼자 있는 게 마냥 좋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혼자 있어도 꽤 괜찮은 거 있잖아요. 해외에 살면서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나게 됩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굳이 말 걸지 않았을 경우에도 그냥 자연스레 애들 얘기, 일 얘기, 취미 생활 등등 정보를 나누는 차원에서도 스몰톡크를 합니다. 어쩌면 친구를 만드는 게 외국 나와서 더 쉬울 수도 있겠네요. 특히 제가 살았던 대부분의 지역이 다양한 국적이 모여사는 곳이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너도 나도 이방인이니까요. 그렇게 마음 맞는 친구가 생기고 우정이 깊어질 무렵... 또 어딘가로 떠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럼 또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합니다. 잠시 혼자 남겨진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다시 마음이 통하는 다른 친구를 만나, 우리만의 추억을 쌓으며 타지의 삶을 이어나갑니다.
가족들이 무척 보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나마 요새는 페이스타임이 있어서 다행이지만 예전에는 이메일 하나로도 너무 반갑고 좋았습니다. 저 캐나다 유학 시절에는 전자기기를 다루는 게 능숙하지 않았던 엄마가 이메일 쓰는 법을 배워서 저랑 소통하곤 했습니다. 이메일도 일종의 글이잖아요? 글에서 엄마의 말투, 억양, 기분.. 다 느껴지더라고요. 물보다 진한 핏줄은 한국에 있지만 외국에 살면서 물처럼 같이 흘러가는 친구들이 나의 새로운 가족이 됩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와주고, 아플 때 애들도 봐주고, 먹을 것도 나눠주고, 애들 픽업도 가주고... 여러 모로 힘이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인 "조승연의 탐구생활" 에서 작가님이 구독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을 때 였던 것 같아요. 조승연 작가님은 미국, 프랑스에서 유학 경험이 있고 한국어를 비롯한 영어, 프랑스어 등 여러 언어에 능숙하신 분입니다. 누군가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해외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제가 기억하기론 자기만의 그룹을 빨리 만들라고 하시더라고요. 이 말도 너무 공감이 가는거에요. 사람을 아무리 만나도 가득 채워지지 않는 타지 생활이지만, 공통 분야가 있고,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있다면 해외 생활이 더 재미가 있어지는 거죠. 제가 카타르에 처음 왔을 때, 한 외국인 친구와 같이 운동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졌고, 그 친구가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카타르가 자연스레 익숙해지더니, 어느샌가 어떤 그룹에 속해 하하 호호 웃고 있더라고요. 1년 후 그 친구는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 때 마음이 좀 허했습니다. 뭔가 이 곳이 다시 낯선 곳이 된 느낌이랄까요? 갑자기 할 게 없어진 것 같고요. 실제로 그 친구가 떠나면서 하던 운동을 그만 뒀습니다.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깨닫죠. 해외에 살다보면 친구 만드는 게 쉬우면서도 참 어렵다는 사실이요. 친해졌다 싶으면 또 어딘가로 떠나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까요. 이런 패턴을 자각하고 나면 이제는 마음 상하는 게 좀 덜하게 됩니다. 결국 저는 제 갈길을 가야하고,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는 거니까요. 그래서 혼자 일 때 어떻게 저를 돌보냐구요? 생각해보니 혼자일 때가 정말 없습니다.
남편도 있고 아이들도 있습니다
ㅋㅋㅋ 혼자서 느끼는 외로움은 잠시 사치였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싱숭생숭 할 때는... 일단 운동 가방 챙겨서 나가 봅니다. 확실히 땀을 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찬물 샤워를 해줍니다. 씻을 땐 괴로운데 씻고나면 아드레날린을 듬뿍 얻고 또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렇게 몸을 좀 괴롭히고 나면.. 뇌를 괴롭힐 차례입니다.ㅋㅋ 좋아하는 언어 공부도 하고 쌓아 놓은 책도 읽고 스도쿠도 합니다. 최대한 핸드폰은 안 보려고 노력합니다. 결국 또 공허함이 물밀듯 몰려오거든요. 다음엔 노트를 펼쳐서 온갖 잡 생각을 털어놓습니다. 뭐를 써야할 지 모를 때는 필사를 합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저는 이렇게 저를 돌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혼자 있어도 썩 괜찮더라고요? ㅋㅋㅋ 생각만해도 좋은 건 왜일까요?ㅋㅋㅋ
'에피소드 > 타국살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희로애락 (2) | 2024.12.23 |
---|---|
블로그가 좋은 이유 (1) | 2024.12.15 |
지나온 인생의 순간이 하나로 이어질 때. (3) | 2024.12.03 |
친구의 의미 (1) | 2024.11.22 |
엄마는 아플 시간도 없습니다. (3) | 2024.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