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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타국살이

희로애락

by minisha 2024.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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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로애락 뜻

 

    인생은 정말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 가끔 사주도 찾아보고, 타로카드도 해보고.. 별 의미 없는 꿈 내용에 자꾸 의미 부여를 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알고 싶으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입니다.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미리 알면 대처라도 할 텐데 말이죠. 이번 겨울, 계획에도 없던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기쁜 일로 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너무 긴장했던 걸까요? 기내에서도 입이 바싹 타 들어가더니 공항 문 밖을 나오는 순간, 추운 공기가 뺨을 내리치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게 너무 예민하게 느껴져서 올해 마지막이 순탄지 않으리라는 점은 확신했습니다. 

너.. 들어와야할 것 같아.

 

 

이 한 마디에 온 몸이 얼어붙었습니다. 그 날 저녁 비행기 타고 바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 두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다고요. 아이들은 이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생각지도 않은 질문에 슬픔 사이로 작게 나마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 콜라를 많이 마셔서 그래?" 처음에는 아이들을 같이 데려가는 게 조금 버거울 것 같았는데, 현실은 제가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저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도 눈 내리는 모습에 까르르, 할머니 옆에서 조잘조잘, 하루에도 수십번 "엄마"를 외쳐댑니다.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 될 무렵 제 정신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어딘가 숨어있던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내일은 괜찮을까요. 저는 이상하게도 한국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외국에 있었습니다. 그때는 학업으로 인해 또는 일 때문에 한국에 바로 올 수 없었습니다. 한참 지나서야 한국에 왔을 때는 이미 한 차례 큰 파도가 치고 잔잔한 물결만 남아있을 뿐이었죠. 그래서 더욱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이번에는 바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이 방학이기도 했고, 좌석도 남아있었으며, 때 마침 비행기 시간대도 당일 바로 있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었죠. 단 하나,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날아왔습니다. 


 

우리가 만일 한국 또는 프랑스에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모국에서 가족들과 왕래하며 "우리 나라" 를 맘껏 만끽했겠지요. 그게 한국이 되었든 프랑스가 되었든 말이에요. 제가 둘째를 한국에서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그 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거의 2년이 다 되도록 프랑스에 갈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에 계신 저희 시부모님들은 영상 통화할 때마다 울컥하셨었죠. 우리 손주도 못 보고 상황이 참 고되다고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그 때의 시댁 식구들의 행복함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 싶다는 말도 자주 합니다.

"할아버지가 사준 닭강정이 먹고 싶어요!"
"할머니랑 퍼즐 놀이 하고 싶어요."
"파피랑 스케이트 파크 갈래요." 
"마미가 해 준 프렌치 토스트가 생각나요"

 

*파피( papi)/ 마미(mamie): 불어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이르는 말.

 

구체적으로 무얼 했는지 까지 기억하며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을 회상합니다. 아이들이 비록 그 나라에 살고 있지는 않아도 고향의 따뜻함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양가 조부모님이 두 팔 벌려 환영해 주는 덕분이겠죠. 즐거운 추억만 가득 안고 우리가 떠날 때 즈음엔 또 많이 허전해 하십니다. 또 얼마나 지나야 볼 수 있을런지... 그리움으로 바뀌죠. 그나마 영상 통화가 있어서 다행입니다만 한편으론 우리가 보고 싶을 때 맘껏 볼 수 없기에 아쉽기도 합니다. 


 

외국에 산다는 건 이 모든 걸 포함합니다. 어려서는 공부하러, 젊어서는 경험하러, 나이 들어서는 흘러가는대로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챙겨야 할 가족들도 생겼으니까요. 지금껏 나를 챙겨준 가족을 떠나 마치 넓디 넓은 바다를 항해합니다. 어렸을 땐 뭣도 모르고 겁없이 나왔지만, 지금은 모든 결정에 더욱 신중해지고 이 모든 평범한 하루 하루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요 며칠 잠이 안 오고, 생각이 많아져 끄적이기 시작했고... 이럴 때 일수록 마음을 다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블로그에 이런 마음을 남겨도 좋을지 고민도 많았습니다. 감정이 드러나는 글은 더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그래도 이럴 때 일수록 더 차분하게 헤쳐나가려 합니다. 제가 처음 캐나다에 유학을 가기 전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날만큼은 엄마 옆에서 곤히 잠들었는데 아주 이상한 꿈을 꿨습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언가 저를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엄마한테 이 꿈 이야기를 하니, 엄마도 말해주더라고요. 꿈에서 어떤 귀신 같은 여자가 너한테 달라붙는 것 같아서 엄마가 놀래서 몽둥이로 머리를 계속 내려쳤다고요. 그냥 들으면 너무 무서운데... 더 놀라운 건 삐쩍 마른 우리 엄마가 그 와중에 맞서 싸울 생각을 했다는 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딸을 위해선 그 누구든 대단한 엄마가 되는거겠죠? 모두가 힘든 이 시기에 딸로서, 동생으로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려 합니다. 용감하게 맞서 싸워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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